신용회복경험담

2025.06.24 16:21

간호사도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다시 일어날 수 있어요

  • 최고관리자 5일 전 2025.06.24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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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버텼던 삶 (약 15%)

저는 올해 36세,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입니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두 아이를 키우며 일과 육아를 병행해왔습니다. 하루 12시간 가까이 병동을 뛰어다녀도,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엄마로서의 하루가 또 시작됐죠.
결혼 초엔 평범한 가정을 꿈꿨습니다. 남편의 사업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듯했지만, 성격 차이와 경제 문제로 갈등이 깊어졌고 결국 3년 반 전 이혼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2. 전개: 이혼이 남긴 것은 자유가 아닌 빚이었다 (약 25%)

이혼 후 아이들의 양육권은 제가 맡았습니다. 남편과 합의는 원만했지만, 문제는 위자료와 재산 분할, 그리고 그동안 공동명의로 사용했던 카드와 대출이었습니다.
집을 정리하고 일부 현금을 지급하는 대신, 제 명의로 남아 있던 대출과 신용카드 잔액이 고스란히 제 몫이 되었죠.
은행 2곳에서 약 5천만 원, 카드사에서 약 2천8백만 원, 총 7천8백만 원의 빚은 제 수입으론 감당하기 힘든 액수였습니다.
간호사 월급이라고 해도 세금 떼고, 아이들 교육비와 생활비까지 고려하면 남는 게 거의 없었고, 연체가 시작되자 이자는 순식간에 불어났습니다.



 


3. 위기: 더는 숨길 수 없던 한계 (약 20%)

진짜 위기는, 둘째 아이의 병원비를 카드 결제로 막았을 때였습니다. 남은 한도가 얼마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죠. 그날 저녁, 카드사에서 연체 관련 문자가 오고, 제 손이 떨렸습니다.
이틀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울기만 했습니다. 병원에서도 실수가 잦아졌고, 동료가 제 어깨를 다독이며 조심스럽게 “혹시 개인회생 같은 제도 들어봤어?”라고 물었을 때, 처음으로 이 제도를 알게 됐습니다.
처음엔 망설였습니다. ‘내가 그런 걸 해야 하나? 간호사인데?’라는 자존심도 있었고요. 하지만 며칠 후 아이가 “엄마 왜 이렇게 자주 울어?”라고 묻는 순간, 결심이 섰습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살 길을 찾아야겠다고.



 


4. 해결: 긴 절차지만, 다시 살기 위한 준비 (약 25%)

개인회생 상담을 받고부터 인가까지 약 4개월이 걸렸습니다. 서류를 모으는 것도, 자산 내역을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상담사 말대로 차근차근 진행하니 길이 보였습니다.
법원에 제출한 변제계획안은 월 32만 원씩 3년(36개월) 동안 갚는 조건이었고, 다행히 인가가 나왔습니다.
법원 출석은 떨렸지만, 진심을 담아 사정서를 작성하고 제 상황을 설명드렸더니, 판사님도 고개를 끄덕여 주셨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 못 하고 혼자 끙끙 앓았던 그 시간들이 더 괴로웠어요. 하지만 아이들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5. 결말: 삶이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다 (약 15%)

지금은 회생 인가를 받은 지 1년이 지나, 한 번도 빠짐 없이 성실히 변제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생활은 여전히 빠듯하지만, 빚에 쫓기던 공포는 사라졌습니다.
아이들과 주말에 나들이를 다녀올 여유도 생겼고, 삶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미래를 그려볼 수 있게 되었어요. 3년 후 회생 종료 후에는 간호사 경력을 살려 병원 내 교육 파트로 이직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같은 상황에 있는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어요. 개인회생은 실패한 인생의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기회입니다.
부끄러워 마세요. 저도 그랬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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