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자식 위해 짊어진 빚, 이제는 나를 위한 회생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4.23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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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퇴직 후의 소박한 일상
저는 올해 62살, 공기업에서 35년을 근무하고 정년 퇴직한 후 지금은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아내와 함께 살고 있고, 자녀 셋은 다 성인이 되어 각자 자리 잡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퇴직 후엔 조용히 손주 보고 텃밭 가꾸며 지낼 줄 알았지만, 인생이란 게 늘 뜻대로 되진 않더군요.
퇴직 당시엔 퇴직금도 어느 정도 있었고, 부채 없이 지냈습니다. 아이들 대학 등록금, 결혼자금까지도 어떻게든 해냈죠. 그런데 막내가 “유학을 가고 싶다”고 했을 때, 사실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자식 키운 부모 마음이 어디 그렇습니까. 마지막이다 싶어 은행 두 군데서 학자금 대출을 받고, 카드론까지 써가며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2. 전개: 눈덩이처럼 불어난 유학비 대출
막내는 미국으로 갔고, 처음엔 잘 적응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생활비가 예상보다 많이 들었습니다. “등록금도 올랐어요, 생활비 좀 보내주세요” 하는 연락이 자주 왔고, 어느 순간부터는 제 통장에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죠.
퇴직금도 거의 바닥났고, 생활비 충당을 위해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쓰게 됐습니다. 그렇게 4년 동안 늘어난 빚이 8,000만 원. 은행 2곳, 카드사 2곳에 매달 이자만 70만 원 이상 빠져나가더군요. 월급 180만 원의 경비 일자리로는 감당이 안 됐습니다.
그 무렵부터는 우울감도 찾아왔습니다. 밤낮으로 아파트 단지를 순찰하면서도 머릿속엔 빚 생각뿐이었고, 아내에게는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애 하나 제대로 못 키우냐”는 자책이 계속됐어요.
3. 위기: 아내의 눈물, 결심의 계기
결정적인 계기는, 아내가 병원비를 걱정하며 조심스레 묻던 순간이었습니다. “당신 요즘 왜 그렇게 불안해 보여요?” 말끝에 눈물이 맺혀 있더군요. 그날, 저는 처음으로 모든 걸 털어놨습니다. 빚이 얼마나 됐는지, 왜 숨겼는지, 이제는 감당이 안 된다는 것도요.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자존심도 상했고, ‘이 나이에 무슨 개인회생이냐’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주변 지인의 조언으로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고, 상담 첫날 제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죄송합니다”였습니다. 상담사는 담담히 말했죠. “지금은 죄송할 게 아니라,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4. 해결: 처음엔 낯설었지만, 숨통이 트였다
상담부터 법원 인가까지 약 4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소득은 경비 일자리에서 나오는 월급이 전부였기에, 월 변제액은 45만 원으로 책정됐고, 변제기간은 3년으로 정해졌습니다.
처음엔 모든 금융 거래가 제한되어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그런 환경 덕분에 지출 관리가 철저해졌습니다. 아내도 적극적으로 생활비를 관리해주며 도와줬고요.
법원 출석 당시엔 나이가 많아 눈에 띌까 봐 걱정했지만, 막상 가보니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앉아 있었고, 묘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내가 특별히 잘못한 것도 아니고, 단지 가족을 위해 선택한 결정이 낳은 결과였구나, 그렇게 제 자신을 조금씩 용서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5. 결말: 인생 2막을 위한 재정비
지금은 변제를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매달 성실히 갚아나가고 있고, 더는 카드 독촉 전화에 숨지 않아도 됩니다. 무엇보다 제 마음의 짐이 가벼워졌다는 것이 큽니다.
아이도 잘 졸업하고 안정된 직장을 얻었고, 요즘은 저에게 “아버지, 제가 조금씩 도와드릴게요”라는 말을 하더군요. 그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결국, 제가 해온 선택이 헛된 건 아니었다는 걸 느낍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보며 고민 중이신 분이 있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개인회생은 끝이 아닙니다. 다시 삶을 정돈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인생 후반부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걸, 저처럼 평범한 60대도 증명하고 있습니다. 숨지 마시고, 상담부터 받아보세요. 늦지 않았습니다.